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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철 교수 인터뷰 및 칼럼

Interview & Column

민병철 교수 인터뷰 및 칼럼

[문화일보] “문법만 따지던 시대 생활영어 충격”
관리자
2017.06.02 16:42:10 · 조회:1627
민병철 “문법만 따지던 시대 생활영어 충격… 내 방송땐 학원도 텅 빌 정도”
국민 영어선생님 민병철 건국대 교수
▲  ‘국민 영어선생님’으로 불리며 소통 중심의 생활영어 보급에 앞장서 온 민병철 건국대 교수가 국제학부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비즈니스 영어’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사람이 있다. 민병철 교수가 바로 그렇다. 민병철 교수는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아이콘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 영어선생님’으로 소통 중심의 생활영어 보급에 앞장서 온 ‘실용 영어의 개척자’라 불리며 대한민국에 영어회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영어 전도사’다. 1981년 ‘민병철 생활영어’로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그는 2009년 9월부터 건국대 국제학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 과목은 비즈니스영어.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그는 특히 요즘은 학생들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제안서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스마트 폰 앱개발 기획서를 발표하고 그 중에서 우수 내용을 채택, 팀별로 만든 앱개발 기획서를 최종 검토한 뒤 해당분야 공공기관 및 기업체와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무궁무진한 에너지와 가르침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민병철 교수의 무한진화 스토리를 듣기 위해 지난 5월31일 오후 그를 찾아갔다. “목요일은 강의가 없는 날”이라며 기자를 초청한 곳은 그의 개인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유창빌딩. 빌딩 머리글에는 ‘강남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와 성수대교를 지나 수도권 남부 위성도시에 이르는 언주로 교차점에 위치한 대지는 그 협소함에도 높은 인지성을 지니고 있다’고 적혔다. 머리글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사무실은 강남의 요지였다. 대지 342㎡에 지하 3층 ∼지상 15층 건물. “영어 하나로 떼부자가 됐다”는 세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 출구에 자리한 이 빌딩에 들어서 “민병철 교수를 찾아왔다”고 말을 건네자 경비원은 “회장님요?”라고 되물었다.

10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가장 먼저 민병철 교수가 영어에 노출된 상황부터 시작됐다. 영어와의 인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연희동에 살았는데, 그때 연희동에 호주 사람이 선교사로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됐어요. 중학교 때. 신앙심이 있어 나간 게 아니라 배고픈 시대라서 가면 사모님이 일요일 12시 사택에서 밥을 주는데, 미트볼 스파게티를 해줬어요. 요즘 먹어도 맛있는데 그때는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 집 아이들인 그레고리, 캐시와 함께 신촌 바닥을 쏘다니기도 하고…. 그렇게 영어를 배우면서 잘 안 되면 한국말로 적어 녹음을 한 뒤 엄청난 반복 학습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식사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집 뒤뜰에서 중얼중얼 (영어)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사모님이 “뭐 하니”라고 물으며 “라디오뉴스인 줄 알았다”고 칭찬해 줄 정도로 영어에 빠졌어요.”

―영어 공부 비결이 있나요.

“영어 학자들은 모국어를 배우듯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과 달라요. 우리가 구구단을 이해하면서 배웠나요. 그냥 외우는 것이지요. 국회의원, 유명연설가들 모두 이해해서 말할까요? 아니지요. 기본적인 것을 외운 다음 이해, 발전, 진화하는 것입니다. ‘모국어 배우듯 해야 한다’는 사람은 다 미국인이나 미국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 그들에겐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이지만 우린 포린 랭귀지(foreign language·외국어)입니다. 기본은 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great king(옛날 옛날에 위대한 왕이 있었어요)’을 여러 차례 반복해 문장이 저절로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농축된 기본 데이터를 갖춰야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체중감량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라도 몇 끼는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언어도 기본 습득량이 있어야 유창한 영어가 가능한 것입니다.”

―국제무대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중에는 누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정말 영어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발음이 유창하지는 않지만 깊이 있고 포용적인 사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영어 표현이 갖춰져 있지요. 이것이 진정한 영어 능력입니다. 한국의 영어교육 방향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해요.”

그는 축구 스타 박지성(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의 영어도 치켜세웠다. 최근 CNN의 ‘토크 아시아’라는 프로그램에서 매우 논리적이고, 유창한 박 선수의 영어 인터뷰를 보고 운동선수가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이 제대로 없음에도 박 선수의 영어 실력에 놀랐다며 이는 경험을 통해 축적한 콘텐츠가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어공부의 적기는.

“영어의 환갑나이는 12, 13세라고 말합니다. 일단 일찍 시작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방에서 태어난 아이가 서울에 왔을 때 12, 13세 이전에 왔다면 서울말을 하고 살지만 그 이후에 서울에 오면 평생 지방 말을 쓰는 걸 볼 수 있어요. 사투리 억양을 극복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병철을 있게 한 ‘MBC 생활영어’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당시 MBC에 신대근 경제부장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1979년 시카고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한국 문화의 날 행사에서 제가 사회를 맡았는데 행사가 끝나고 점심 자리에서 그를 만났어요. 신 부장이 식사 도중에 ‘나는 미국인이 사회를 보는 줄 알았다’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발음이 미국인 발음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 오시면 꼭 방송국으로 찾아달라고 했어요. 나중에 한국에 왔다가 잊지 않고 그를 찾았더니 ‘민 선생님, 저희 라디오에서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구상하는데 한번 맡아보시겠습니까’라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인연이 참 소중해요. 신대근 부장이 민병철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이지요.”

하루 15분짜리 라디오방송. ‘국민 영어선생님’ 민병철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15분에 인생을 건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에 몰두하면서 실용영어 학습에 초점을 맞추고 대본도 직접 작성했다. 이렇게 1년6개월간 라디오방송을 하고 난 1981년 가을 MBC에서 TV 영어강좌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방송시간은 아침 6시30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30분씩 편성해놓고 담당 프로듀서(PD)까지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TV는 겁이 나 망설였다. 당시 PD인 은희원 씨에게 “매일 30분씩이면 너무 무리한 욕심인 것 같다”며 방송 시간을 15분으로 줄여달라고도 했고, 월∼토 방송을 1주일에 두번 정도만 방송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할 만큼 부담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 은 PD의 설득으로 1981년 10월 “Good morning everyone. How are you”라는 영어 멘트로 시작된 ‘MBC 생활영어’는 1984년까지 계속되고, 다시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고정프로그램으로 이어져 장수 프로그램 반열에 올랐다.

―MBC 생활영어가 히트를 친 이유는.

“당시 미국 영어에 대한 새로운 충격이었어요. 새로운 영어, 문법에 젖어 있는 한국식 영어와 전혀 다른 새로운 영어가 TV에서 쏟아지니….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당시는 어느 대학 영문과 교수가 스테이크를 시키면서 ‘미디엄, 웰던, 레어’라 말하지 않고 ‘미디엄, 라지…’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영어를 할 때 ‘I am going to~’를 ‘I’m gonna~’로, ‘I want to~’를 ‘I wanna~’로 표현했는데 한 영어 선생님이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와 ‘왜 원트 투, 고잉 투를 그렇게 말하느냐’고 따졌어요.”

―100만 부 이상 책이 판매됐다면 인세도 많았을 텐데.

“많이 들어왔어요. 방송을 하는 동안 아침에 학원 수강생이 없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으니… 학원에 안 가고 방송 듣느라고. 그때 방송 출연료와 책을 팔아서 집도 사고….” 민 교수는 당시 방송 출연료와 책을 판 돈이 얼마냐고 묻자 ‘돈’에 대한 대답은 극구 사양하며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한 채를 산 정도”라고만 해달라고 했다.

이젠 돈 걱정 없을 그에게 사회적 기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비를 들여 ‘선플달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선플’은 착한 댓글, 즉 악의적인 댓글인 ‘악플’의 반대말이다. 온라인에서 악플 대신 선플을 달자는 인터넷 평화운동이다.

“2007년 초에 유니라는 가수가 악플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너무 충격이었지요. 그 당시 중앙대 부교수로 있었는데 다음 학기에 무엇을 가르칠까 생각을 하다가 우리 대학생들이 인터넷 세대니까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어요. 10명의 유명인들에게 좋은 말을 달아줘라. 악플 때문에 고통 받고 세상을 등질 수도 있다. 용기와 희망을 주라고 하면서…. 당시 온·오프라인 학생 570명을 가르쳤는데 570명에게 10개씩의 선플 달기 과제를 주니까 1주일 만에 5700개가 나왔어요. 그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확대됐어요. 선플달기운동 이전에는 2005년에 ‘추임새운동’을 했어요. 우리 사회 어디든지 근거 없는 말로 상대방 발목 잡는 일이 많아요. 그걸 많이 경험한 다음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였어요. 결국 ‘발목 잡지 말기 운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당시 국악 전공인 박범훈 총장(현재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추임새’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

그가 세운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의 홈페이지에는 6월5일 현재 전국의 청소년들이 올린 아름다운 댓글이 277만 개를 넘어섰다. “근거 없는 악플에 상처 받고 고귀한 생명을 버리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격려해주는 아름다운 선플이 한국에서 1000만 개, 아시아에서 1억 개가 달리는 게 목표입니다. 나아가서 세상 사람 숫자만큼 많은 선플이 달렸으면 좋겠습니다.”